인천으로 번진 멈추지 않는 시위의 물결

인천 4·19학생의거 기념탑


 FM49+7HG 인천광역시

인천 미추홀구 한나루로 545 /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교정에 있음



장소 이야기

인천의 4·19혁명은 그 규모나 의의에 비해 혁명 기간 동안 겪은 피해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부정과 불의에 누적된 국민의 분노가 3·15부정선거를 앞두고 인천에서도 폭발했다. 3월 14일 인천고와 제물포고, 송도고, 동산고 학생 30여 명이 ‘공명선거 실시’와 ‘학원 자유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4월 19일에 이르자 인천지역 초등학생을 포함한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자유를 외쳤다. 대학생과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에 호응하면서 인천 시내에 시위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인천공업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교사들의 만류를 피해 시내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자유공원과 동인천역 광장, 제물포역 광장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시청 집결을 목표로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였다.

4월 20일에는 인천사범학교 300여 명이 숭의동 청과시장 앞에서“경찰은 민주적 학생 데모에 총칼을 쓰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나갔고

21일에는 인하대학교 학생 200여 명이 경동파출소 앞에서 연좌시위에 나섰다. 22일이 되자 시위대는 3천여 명으로 확산되었다. 시위대는 경찰로부터 경찰봉과 개머리판으로 구타를 당했지만 해산하지 않았다. 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현재 기록에는 사망자는 1명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인천의 시민혁명의 기억들이 인천의 역사에서 소외되고 있다.

그러기에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교정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4·19혁명기념탑은 역사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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