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의 피, 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

광주 4·19혁명 진원지 표지석


 4WX8+W83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37-2(충장로1가) / 금남로공원 도로 길가에 표석 있음



장소 이야기

1960년에 발생한 ‘광주 3·15의거’는 1960년 이승만의 부정선거에 대한 첫 시원이었으나 역사적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기념일로 지정받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3월 15일 부정 표를 발견한 시민이 선관위에 항의하자 정치깡패가 폭행한 것이 발단이 되어 ‘부정선거 규탄 거리 시위’를 하자는데 뜻이 모아졌다.

“아이고 아이고 민주주의 죽었네!내 표를 뺏어간 놈 누구냐!!”

광주시 금남로에서 일어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곡(哭) 민주주의 장송데모’는 민주당원들과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 규모는 1,200여 명이 넘어섰다.

이날 시위는 도청으로 향하는 도중 무장 경찰 200여 명과 소방차의 출동으로 유혈 충돌이 있었다.

학생시위대의 최대 격전지는 광주경찰서였다. 경찰은 최루탄과 공포탄으로 시위대와 맞섰고 경찰 돌격대는 시위대를 향해 돌격도 서슴지 않았다. 시위대가 피를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자 경찰은 발포를 시작했다. 탕탕탕. 6명이 금남로, 충장로에서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피로 물든 광주의 소식은 목포, 여수, 순천 등 전남 일대로 퍼져나가 시위의 물결은 더욱더 거세졌다.

광주 4·19혁명 진원지 표지석은 2011년 3·15, 4·19혁명의 진원지였던 이곳 금남로 공원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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