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횃불이여
부산 3·24의거 기념비
42CP+FP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40번길 23(초량동) / 부산고등학교 정문에서 50미터 안쪽에 있음
장소 이야기
부산고 학생들의 3·24시위는 준비과정의 치밀함과 규모 면에서 전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부산고 시위는 4·19 역사에 빛나는 의거로 재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1960년 2월 28일 대구, 일요일 강제 등교령으로 대구 학생들의 시위 소식이 전국의 고등학교를 들썩이게 했다. 3월 15일, 문제의 부정선거로 마산, 광주, 전주, 청주 등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높이자 3월 17일 부산고 학생들도 모여 다른 학교와 제휴할 방법을 찾았다. 거사날짜를 3월 25일로 잡았다가 경찰에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 하루 앞당겨 24일로 결정하였다.
3월 24일, 이날 시위 장면은 부산에서의 첫 번째 거사였기 때문에 중앙지를 비롯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000여 명의 부산고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제지를 무릅쓰고 “정부는 마산사건에 책임을 져라” “독재정권 타도하자” “신성한 학원을 정치 구도화해서는 안 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박차 나섰다.
경찰의 수류탄과 기관총 난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성난 시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오전부터 시작된 시위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시민 19명이 사망하였고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4월 19일 전국 5개 도시에 공포된 비상 계엄령으로 부산의 시위는 잠시 잦아들었지만, 다시 점화되었다.
부산고 학생들의 3·24시위는 전북대 4·4시위와 고려대 4·18시위로 번지게 한 촉발제가 되었다.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후배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졸업생들이 뜻을 모아 2011년 부산고등학교 교정에 3·24의거 기념비가 세워졌다. 학생들이 불의에 항거하고 총칼에 맞서 싸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3·24의 횃불이 영원히 빛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