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으로 뒤덮힌 피의 화요일

서울 4·19 혁명 최초 발포 현장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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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동 139 /‘청와대 사랑채’건물 앞 광장 바닥에 표지 있음



장소 이야기

1960년 4월 19일 화요일의 아침은 경악과 울분으로 밝아오고 있었다. 조간신문은 고려대 시위와 깡패 습격 사건으로 1면을 장식했다.
벌써부터 은밀히 시위를 준비해 오던 서울대, 연세대, 건국대, 중앙대, 경희대, 동국대, 성균관대 등 계획에 없었던 학교의 학생들마저 혐오와 분노로 극에 달했다.

정치 깡패들의 무차별 테러 사건이 국민의 분노를 임계점에 다다르게 했다. 서울 시내는 온통 독재 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수호를 요구하는 10만 명의 학생들과 시민들로 뒤덮였다.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나아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의 공방은 더욱더 거세지고 격렬해졌다.

최루탄과 공포탄으로 시위대를 막던 경찰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이 픽픽 쓰러졌다.

특히 당시 시위대에는 서울의 대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많은 청년이 경무대 앞에서 목숨을 잃었다. 동국대학교 학생이었던 노희두 열사도 경찰이 발포한 총을 맞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노희두 열사는 경무대 앞 발포로 인한 최초 순국자로 알려져 있다.

서울 시내가 완전히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날 하루 동안 시위로 서울에서만 100여 명,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했다. 대규모의 유혈사태가 일어난 4월 19일을 피의 화요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1960년 4월 19일 화요일은 경무대 앞으로 몰려든 시민을 향한 국가 권력의 첫 발포가 있었던 날이다. 2018년 청와대 사랑채 건너편 보도블록에 인권탄압 현장을 기억하기 위해 4·19혁명 최초 발포 현장 표지가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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