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민주’와 ‘자유’의 외침
청주 4‧19학생혁명 기념비
MF5P+C53 충청북도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덕로 45(내덕동) 청주농업고등학교 / 학교 교정에 있음
장소 이야기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독재 정치에 민심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민중의 한계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독재 정권의 언론 탄압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소식은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고 청주 시내의 고등학생들이 집단시위를 계획하게 된다.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학생들은 교문을 뛰쳐나와 합동 시위를 했다.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진압했지만, 학생들의 ‘민주’와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4월 18일 밤. 청주농고 학생들은 밤새 전단과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우리도 무장을 해야 한다’며 삽과 호미, 괭이 등을 들고 나섰다. 수백 명의 학생은 논길, 철도 길을 건너 시내로 향했고 교사들은 무력충돌을 우려해 학생들을 설득했다. 학생들은 이에 동의하고 평화시위를 위해 농기구를 모두 내려놓았다.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었지만, 최악의 살상극은 피한 것이다. 학생보다 많은 경찰이 투입되고 학생들은 중앙초교 강당으로 감금(?)당하는 처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강당에 붙잡혀 있으면서도 정권교체 등을 요구했다.
시내의 대학생 시위가 진정되자 경찰은 청주농고 학생들의 귀교를 허용했다.
청주농고 총동문회는 2,000여만 원의 모금을 통해 4·19 정신을 영원 불멸을 바라는 뜻을 담아 9마리 거북을 조각해 기념비 건립을 추진했다. 기념비는 그날의 함성이 퍼져 울렸던 운동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잔디정원에 자리 잡았다. 4·19학생혁명 기념비에는 재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새겨넣어 4·19혁명의 정신을 한곳에 담아 영원히 간직하고자 했다.
4·19는 지났지만 우리 가슴속에는 그날의 함성을 그날의 희생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