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방’으로 집결하자

광주 충장로우체국


 4WX8+2WW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2가 16 충장로우체국 / 우체국앞 사거리 바닥에 표지 있음



장소 이야기

1960년 4월 20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광주 거리는 무장군인들로 포위되였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전남대 입구에 집결하여 시위를 이어갔다. 헌병들과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무수하게 던지며 시위 진압에 나섰다.

“살인 경찰 물러서라”

시위대는 경찰들의 강한 제지를 무릅쓰고 충장로 4가로 행진했을 때 군인들이 탄 장갑차 10대가 돌격해 시위대를 막았다. 시위대 일부는 금남로1가로 가고 충장로 1가로 진출한 시위대가 충장로우체국 앞에 다다랐을 때 군대와 충돌했다. 학생들은 충장로우체국 주변으로 피신하고 지붕 위로 올라간 학생들은 벽돌과 기왓장을 뜯어 길가에 던졌다. 그 과정에서 군인이 벽돌에 맞는 일이 발생하여 군인들이 흥분하여 위협 사격을 가했다. 사복 경찰들은 닥치는 대로 학생들을 발, 주먹, 몽둥이로 후려갈겨 경찰서로 연행하였다.

충장로우체국은 광주에서는 ‘우다방’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만남의 장소로 명성이 높은 곳이었다. 광주의 명동이라 불리는 충장로는 시위가 있는 날이면 금남로와 함께 시민들이 집결하여 모이기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4.19혁명 당시 충장로와 금남로는 광주시민들의 피가 홑뿌렸던 자리이고 수천 명이 모여 시위를 벌인 만큼 희생도 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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