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에 살고 의(義)에 죽자
서울 3‧17민주의거탑
GW4G+2F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길 74 성남고등학교
장소 이야기
1960년 3·15 부정선거는 1960년 4월 혁명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는데, 그 부정선거에 맞서 서울 지역에서 타올랐던 첫번째 봉기가 바로 1960년 3월 17일 성남고등학교 학생 400여 명이 시가지로 돌진한 사건이었다.
당시 3·15 부정선거 직후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3·15의거에서 결국 경찰에 의한 발포로 시민, 학생들의 희생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멀리 떨어진 서울의 성남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전해졌고, 학생들의 분노와 의기(義氣)는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산 3·15의거 이틀 후인 1960년 3월 17일 오후 1시경, 성남고등학교 학생 400여 명은 경찰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노트를 찢어 자필로 만든 전단지를 뿌리며 가두시위를 감행한다.
학생들은 “부정선거 다시 하라”. “경찰은 마산학생 사살 사건을 책임져라”, “백만학도여 총궐기하라” 등의 구호와 함께 학교의 교훈인 “의(義)에 살고 의(義)에 죽자”를 외치며 목숨을 걸고 경찰과 충돌했다. 돌을 던지고 구호를 외치고, 그렇게 거세게 시위를 하던 성남고등학교 학생들 중 100여 명이 결국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러했던 성남고등학교 학생들의 3·17의거는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 아래 집권당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의 열기를 수도 서울로 연결시킨 중요한 의거였고, 1960년 4월 민주혁명이 서울에서 크게 일어날 수 있었던 시작점이었다.
이 역사의 현장은 3·17의거 이후 46년이 지난 2006년에 이르러 성남고등학교의 이 기념비에 기록돼었고, 61년이 지난 2021년에서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 성남고등학교 학생들의 의기(義氣)는 처음부터 항상 이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역사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